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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콩] 달빛 06

리얼물, 목소리를 잃은 문빈


[M]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연습생 때 책상에 앉아 배웠던 일본어와 무대 위에서 하기 위해 더듬더듬 외웠던 일본어와 일할 때 하는 일상적인 일본어는 많이 달랐다. 


일은 전부 눈치로 했다. 다행히 방송국에는 한국 사람도 꽤 많아서 물어가면서 해도 무리는 없었다. 주로 하는 일은 장비를 옮기거나 보조작가를 돕는 일이었다. 어쩌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잡일 따위였지만 꽤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처음 3달은 삼촌과 같이 지냈다. 방송국에서 꽤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렇지 않았다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일본 방송국에서 일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일본어 공부를 했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죽으란 법은 없는지 일본어는 금방 쉽게쉽게 깨우쳤다.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몇번을 다짐했다. 


3개월치 월급을 받고는 방을 구했다. 그러는 사이, 계절이 바뀌고 반팔을 입을 수도 있게 되었다. 팔목의 상처는 짙게 흔적이 남았지만 이제 그걸 신경쓰지 않을 자신도 생겼다.


가끔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날엔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어떤 모습으로 다니든, 이제 나에게 아스트로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급하게 일본에 오느라 치루지 못했던 일본어 시험을 치고 일본의 방송작가 수업도 들었다. 







임시직, 그러니까 거의 인턴에 가까웠던 시절이 지나가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때쯤엔 더웠던 날씨가 지나고 쌀쌀해질 즈음이었다. 


그 때부터 멤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방송을 보고, 무대를 보고... 최근의 무대에서 멤버들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나의 부재에 관한 질문도 잘넘겨내었다. 


시간은 많은 일들에게 답을 준다. 


정규직으로 전환되고는 가수들과는 영 인연이 없을 라디오의 어느 한 시사프로그램을 희망하고 배정을 받았다. 그냥 이렇게 서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오래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어느 한 구석이 아프더라도.








[C]


한순간도 너를 완전히 잊은 적 없다. 


다섯명의 목소리로 재녹음한 노래가 익숙해지고 빈이가 나간지 1년이 되어가도 이것 하나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너를 검색하고 찾는 일도 의미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잔인하게도 너를 잊었다. 


그동안 나는 더 바쁘게 지냈다. 단체 스케줄의 비중이 많아졌다. 드라마 촬영과 단체 스케줄을 오가느라 바쁜 날을 보냈다. 너를 생각하는 시간도 줄어들긴 했다. 그렇지만 생각하지 않았던 적은 기필코 없다. 


우리가 잘되면, 그 때는 너와 같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M]

임시직에서 정규직으로, 그리고 또 방송국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말도 못하는 잡일꾼에서 보조작가로. 많은 게 바뀌어갔다. 일본에 온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돌아가고픈 마음은 없었다. 절대로. 


5년을 꼭꼭 채우고 귀화를 준비할 예정이었다.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가족들에게는 연락조차 않았었는데 이제야 겨우 드문드문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연락하기엔 현지 적응으로 너무 바빴고, 힘들다는 푸념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별별 핑계들로 연락을 미뤘다. 아니, 아예 한국에서 들고온 휴대폰은 꺼버렸다. 그렇게 계속 내 서랍 속에 박혀있었다.





처음으로 일본에 와서 집에 전화를 하던 날, 이제 내 손목에는 작은 흉터들만 보기싫게 남았다. 여전히 말은 못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스피커폰을 한 채 카톡을 켰다. 


밥은 잘먹니, 아프진 않니. 상투적이지만 가장 눈물나는 걱정들이었다. 전화기가 전해주는 목소리와 몇 달씩 쌓인 메세지들. 눈물이 자꾸 차서 얼른 눈을 비비고 괜찮고 잘지낸다고 언젠가 찍었던 사진 하나를 보냈다. 


“손목은?”


그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왈칵, 내 제어를 넘어섰다. 틀림없이 숨겼다고, 내 아픔은 아무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저 오만한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제 정말 다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난 여기서 열심히 살테니까. 여기서 돌아가지 않을거라는 말도 했다. 부모님은 어린 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과장 조금 보태 걸음 뗄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고, 평범하지 않게 살던 나는 어딜 내놔도 안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 가족들에게는.





취미가 생겼다. 나와 많은 사람들이 쌓은 행복을 마치 관객인 것 마냥 관람하는 것. 


그저, 활동하는 멤버들을 보는 것이었다. 


정말 잘됬다. 멤버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없는 아스트로는 여전히 빛났다. 일본에서 데뷔도 했다. 녹화된 한국 프로그램만 보다가 아마도 처음으로 본방송으로 멤버들을 봤다. 


멤버들이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던 순간, 나는 자막에 쓰인 가사를 읽으며 노랠 따라불렀다. 이제는 익숙해진 바람소리가 났다. 


첫 데뷔곡은 내가 있었을 때 불렀던 노래의 번안곡이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부를 수가 있었다. 멋있다. 목이 이상한 감각으로 떨려왔다. 다시 조심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가 너무 떨렸다. 티비에서는 멤버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딱 다섯 계절이 지나갈 때쯤이었다.







[J]

잊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은 그랬다. 장난을 쳤고 아무렇지 않게 웃었고 연습을 했다. 그 사이 우리의 입지는 좀 더 단단해졌다. 연말 시상식에 불려가기도 하고, 적어도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는 성적표를 받았다. 


잘되면 잘될수록 빈이의 존재는 잊혀졌다. 우리가 잘하는 게 빈이가 돌아올 자리를 남기는 일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건 진작 알았다. 


근데 이제는 그래도 괜찮다. 







오랜만의 일본 스케줄이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우리와 비슷한 여러 그룹들과의 합동 콘서트였다. 준비한 곡은 총 3곡이었다. 일본 데뷔곡과 정규앨범 타이틀곡, 그리고 수록곡 하나.


한국활동이 끝난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멤버들은 줄곧 부르지 않았던 일본 데뷔곡 가사가 한국어로 튀어나올까봐 며칠을 일본어 버젼만 달고 살았다. 덕분에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사히 무대를 마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 대기실로 들어섰다. 매니저 형이 발빠르게 호텔로 가기 위한 짐을 주섬주섬 싸며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멤버들도 느릿느릿 대기실을 떠날 준비를 했다. 매니저 형이 먼저 나가 시동을 걸어두겠다고 했다. 매니저 형이 나가고 10여분 뒤에야 멤버들이 따라나섰다. 나가면서 보이는 스탭들한테 인사를 하고, 딱히 다를 것도 없었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빈아.”


은우의 말에 고개를 돌렸을 땐 거기엔 정말로 까만 마스크를 낀 문빈이 꽤나 무거워보이는 장비들과 함께 있었다. 눈 밖에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함께한 시간이 결코 작지 않아서 그걸로도 충분했다.


빈이는 우리를 몇초간 멍하게 바라봤다. 우리도 그랬다. 빈이가 지탱하고 있던 장비가 휘청거렸다. 산하가 그걸 붙잡았다. 


“….미안..”


얼마만에 들은 목소리인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언제부터였냐고 은우가 빈이 손목을 붙잡고 물었다. 


“얼마 안됬어.”


빈이가 장비들을 어깨에 이고 지나쳤다. 족히 20키로는 될법한데도 그것마저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여기에 있는 걸 안 이상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우리가 하도 나오지 않아서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온 매니저 형이 우리에게 핀잔을 줬다. 


“형,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아까… 우리 여기서 빈이 형 봤어. 산하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여기를 떠날 수 없었다. 너와 해야할 이야기가 많다.







[M]

스태프 인원이 모자라다며 K pop 합동콘서트에 스탭으로 차출되었다. 라디오국과는 하는 일이 많이 달라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내가 맡은 일은 음향기기들 점검과 기기 호환, 그리고 무대 청소였다. 스탭으로 차출되면서 큐시트도 받았다. 나는 큐시트를 쭉 훑었다. 그러다 한 이름에 시선이 멈췄다. 


아스트로.

담담해지기엔 너무 큰 이름이다.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감기기운도 있어서 마스크도 꼈다. 관객이라면 마주칠 일 없을텐데… 스태프여서 더 그랬다. 멤버들이랑 마주치는 게, 무서웠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촬영이 다 끝나고 내가 할 일은 아니지만 장비들을 같이 정리해주고 있었다. 이것까지 끝나야 정말 끝나는 것이니까.







북도를 바쁘게 오가고 있던 시간 중 어느 한 지점에서 나는 결국, 멤버들과 마주쳤다.


“…빈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려 했다. 결국엔 마주쳤지만 모르는 척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자리에 멈춰서서 멤버들을 바라봤다. 들고 있는 장비가 와장창 무너지려고 했다.


“형, 조심해.”


산하가 무너지려는 장비들을 잡아주었다. 얼른 손을 내밀었다. 제법 무거운 것들이었다.


“…미안..”

“너… 목소리, 언제부터야?”


은우가 울먹거리는 눈을 하고 물었다. 얼마 안됬어. 나는 장비들은 어깨에 단단히 얹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빨리 여기서 사라지고 싶었다. 






멤버들은 질기게 나를 찾았다. 이만하면 분명 퇴근을 했겠거니 했는데 장비 나르는 걸 돕겠다며 내 옆에 왔다. 멤버들은 정말로 10키로 짜리 장비들을 하나 혹은 두개씩 들고 나를 쫓아왔다.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일찍 뒷정리가 끝났다. 묻고 싶었다. 왜 도와주었냐고.


“형, 빈이랑 같이 숙소 가자.”


은우가 말했다. 그래, 그러자. 멤버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지못해 그러자고 했다. 도망갈 수 없을 거 같아서..


꼭 1년 반만에 같은 차에 탔다. 멤버들은 내가 알던 시절의 평소랑 다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차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부르고, 장난을 치고.. 일부러 눈을 손으로 가렸다. 눈물이 나올까봐. 아니나 다를까 정말 눈물이 났다. 입술을 꾹 물었다. 옆에 앉은 민혁이 어깨를 토닥거렸다.


“형, 울지마.”


호텔로 가는동안 그렇게 내내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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