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은콩] 달빛 05

리얼물, 목소리를 잃어버린 문빈

[C]

드라마 촬영에서 돌아오고 게스트로 나가는 예능을 두어개 나가고 나서는 더 이상 개인스케줄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받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 직업이 화면 속에서 생글생글 웃는 직업이라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매니저 형은 나를 설득하려고 발을 동동 굴렀고 몇 번은 내가 직접 회사로 불려가기도 했다.


문빈이가 돌아오기 전까진.. 아무것도 안해요.


인생에서 했던 가장 큰 일탈은 이제 바뀔 것만 같다. 스케줄이 없어진 빈 시간들은 빈이를 수소문하는데 썼다. 물론 수소문이라고 해봐야 검색이나 하루에 몇번씩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빈이는 완벽하게 자취를 감췄다. 그 흔한 목격담 하나도 없었다. 무서웠다. 설령 돌아올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연락 한번은 해줄 수 있잖아.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연습실도 매일은 갔다. 매일 눈을 뜨면 빈이가 연습실에 있을 것만 같아서. 가서 춤 연습을 하고 노래연습을 했다. 집중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했다. 그게 우리 직업이니까.


“…형”


민혁이가 나를 잠깐 불렀다. 노래가 끊기고 정적이 잠깐 흘렀다. 요즘 무슨 생각하냐고 물었다. 당연히 빈이 생각 밖에는 없었다. 민혁이 한숨을 푹 쉬었다. 


“형, 왜 요즘 개인스케줄 없어요?”

“…안해. 안할거야.”


형 같이 잘나가는 사람이 한달동안 개인스케줄이 이렇게 없을리가 없잖아. 민혁이 그랬다. 명백하게 팀에서 나를 분리시키는 발언이었다.


그래. 사실 빈이가 없어도 개인스케줄은 줄곧 들어왔다. 드라마 시나리오도 읽어만 보라는 말에 하지도 않을 거 읽어본 것만 대여섯 개에, 화보촬영에, 예능프로그램까지. 


“형, 잊어버려.”

“…빈이를?”

“그게 뭐라도 좋으니까. 형을 괴롭히는 것들 다 잊어버려. 형 지금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이야 회사가 형 말을 들어주는 척 할지는 몰라도 형 이런식으로 하면 형도 빈이 형처럼 쫓겨날걸요..? 연습생들 나가고 들어오는 거, 형도 하루이틀 본 더 아니잖아.”

“넌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내 말은 형은 좀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는 거야. 형이 그래서 당장 쫓겨나면 뭘 할 수 있는데?”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감정은 화였다. 화가 났다. 그냥 받아들이라는 거잖아. 나는 여전히 민혁이랑은 비교도 안되게 어렸다. 어떤 것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 민혁이의 말이 맞았다. 그게 무엇이든 지금은 조금 잊고 수용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더디지만 나는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단체연습을 나가고 예능프로그램을 나갔다. 물론 웃는 건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빈이가 보고 있을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럼 어떻게든 웃어졌으니까. 


언젠가는 돌아올 게 만들거라고 생각했다.


놓쳤던 건 다시 잡으면 돼.








[Y]

빈이 형의 빈자리가 결코 작지 않았다. 멤버들과 다시 파트를 나누고 다시 연습을 했다. 사실은 안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은 연습실도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나간다해도 열심히하지 않았다. 그렇게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도 다들 넋이 나가있었다. 은우 형은 연습실에도 나오지 않았다. 진우 형은 그것조차 그러려니 했다. 오로지 민혁이 형만 열심이었다. 형이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6명이 아닌데 그렇게 담담할 수가 있어.


“야, 윤산하.”


민혁이 형이 나를 불렀다. 연습 제대로 안하냐고 물었다. 민혁이 형은 요즘 부쩍 날카로웠다. 하긴 제 정신으로 연습하는 인간이 한 명도 없는데 안그럴리도 없긴 했다. 어떻게 연습을 하냐고 반문했다. 


“형 오기 전까진 안할래.”


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까지 이러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내가 나쁜거야? 


내 말에 민혁이 형은 아무 말도 못했다. 원래도 형은 내 얼굴에 꼼짝 못하는 사람이긴 했다. 형이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변하기까지 꽤 숱한 연습생들이 형에게 혼나왔음에도 나는 그런 적 없었다. 그게 그 증거였다. 


“우리가 잘하고 있으면 다 돌아올거야.”


정말로 돌아올까? 의문은 묻어두기로 했다. 빈이 형과 7년을 함께 지낸 형이니까 형이 믿는다면 그건 진짜일 거라고 확신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더 잘되면, 지금보다 더 잘하면 

우린 다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R]

산하에게 거짓말을 했다. 우리가 잘하면 돌아올 거라고. 거짓말인 걸 알았다. 아마 산하의 잘못이라면 나에게 너무 약한 게 잘못일 것이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다. 산하는 누구의 말이든 잘믿었다. 거기서 어린 티가 났다. 한 살 차이 밖에 안났음에도.


산하는 그 말을 틀림없이 믿었다. 금세 표정이 펴진 그 순수한 얼굴에 내심 미안해졌다. 빈이 형이 나간건 결코 독단적인 일이 아니었다. 회사랑도 이야기된 내용이었다. 


형의 자리는 이미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 순수한 얼굴에 사실을 말해줄 수가 없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에겐 우릴 움직이게 할 커다란 동력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단지 거짓말을 조금 보태썼을 뿐이다. 


우리가 잘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거야. 


모두가 그 말을 믿었다. 아닌 걸 알았어도 믿었다. 그게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될 것이고 아픔을 견디는 진통제가 될 것임을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명은 아닌 걸 모르는 채로 믿었다.


나는 더 이상 결백한 얼굴로 윤산하를 볼 수 없다. 물론 이게 설령 사실이더라도 걘 나에게 화를 내지는 않겠지만.

은콩 산콩 비누 진제이 산밤

Florence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