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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콩] 달빛 04

리얼물, 목소리를 잃어버린 문빈


[M]

너한테 그렇게 분노를 쏟아내면 안되는 걸 나도 알았다. 분명 조용히 떠나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모든 게 헛수고였다. 너는 나에게 어딜 가냐고 물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적지는 나조차도 몰랐다.


“가지마. 나 너 가면 다시는 안봐.”


울컥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너무 억울했다. 힘들다고 한번도 말하지 못해서, 그렇게 가는 게 가장 억울했다. 이젠 말 대신 익숙해진 메모장을 켰다. 마음에도 없을 말을 가장 먼저 적었다. 나도 너 볼 생각 없어.


이미 나는 충분히 기다렸어. 내가 얼마나 기다릴까? 그리고 누가 나를 기다려줄까?


그런 말을 쭉 적어내렸다. 눈 앞이 자꾸 흐려졌다. 이렇게 끝내고 싶은게 아니었는데... 너는 내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은 너라도 기다려주겠노라고. 그런 답을 원했다. 그래. 그럴 수 없다는 걸 나도 잘알았다.


“…다시 한번만 생각해보자.”


되지도 않을 일로 희망고문하게 하지마. 그게 제일 잔인한 일이니까. 나 붙잡지마. 나 지금도 너무 힘들어.


아마 이게 니가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말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J]

숙소가 싸늘했다. 빈이의 짐이 아무것도 없었다. 빈이는 내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무슨 일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문빈이 아스트로를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움직여 나가야 했다.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그걸 이끄는 게 내 역할이었다. 그러나 나도 리더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연습을 했고 노래를 했다. 간간히 잡히는 행사들은 5명 혹은 4명으로도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게 거짓말 같았다. 그 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도 괜찮아? 민혁이에게 물었다. 가장 리더에 가까운 누군가를 고르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 내가 아니라 민혁이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건 문빈이 결정한 일이기도 한 거라고. 


그래. 그렇게 믿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섭섭하기는 했다. 오직 민혁이에게만 나갈 거라고 예고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민혁이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문빈이 정말 완전히 나간거냐고 뒤늦게야 회사에 물었을 땐 이미 얘기된 내용이라는 답변만 얻었을 뿐이다. 


민혁은 겉으로 티내지 않았지만 몇 번은 나에게 와서 말했다. 형이 분명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숙소 생활을 했으니 서로의 집전화는 딱히 알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의미있게 새겨듣지도 않았었다. 휴대폰은 이미 정지되어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민혁이는 이따금씩 내가 보는 앞에서만, 아주 가끔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냥 우리는 다 똑같이 불안했을 뿐이다.









[M]

숙소에 더 이상 갈 일이 없다. 그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데 얼굴보고 인사할 이유는 무엇인가 싶었다. 메세지를 남길까도 생각해봤지만 괜히 여지를 남기는 일일 것만 같아서 그만뒀다.


지금 나는 멤버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나쁘게 보여야 했다. 그게 모두에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편하게 만들거라 믿었다. 


갈 곳이 없으니 이제 집에라도 돌아가야 했다. 가족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내가 목소리를 잃었다는 사실도, 내가 아팠었다는 사실도. 내가 이야기하지 못하게 했다. 그 때까진 나도 돌아올거라 믿었으니까. 


7년, 아니 8년의 결과가 이게 전부라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 지독하게 무력한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결국 돌아갔다. 


목소리가 없는 나를 가족들은 놀라긴 했어도 별다른 말 없이 받아들였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돌아온 첫 날 가장 많이 울었다. 오랜만에 들어선 내 방에서 몇 년치 울음을 한꺼번에 쏟았다. 


그 뒤로 나는 울지 않았다. 

물론 웃지도 않았다.


그저 방에서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어딜가나 멤버들을 만날까봐 두려웠다. 사실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냥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일부러 부정하려고 애썼다. 그러는동안 나는 한번도 우리 집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목이 너무 싫어서 스스로 목을 졸랐다. 방문을 잠근 채 목을 손으로 감싸고 힘을 줬다. 그런데 본능이 뭐라고 자꾸만 손에 힘이 풀렸다. 두 눈을 꼭 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주변이 엉망진창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아마 산소부족으로 쓰러지면서 손에 힘이 풀려서, 그래서 죽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다음엔 수면제를 들이부었다.


1.5리터 물에 약 한통을 두고 끝없이 먹었다. 이러면 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때도 나는, 질기게도 살아있었다.





그 다음엔 손목을 그었다. 


면도칼을 손에 꼭 쥐고 수도 없이 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죽을 수 없었다. 깊게 상처가 새겨질 때마다 자꾸만 한 명씩 떠올랐다. 가족들, 멤버들. 이제 나는 멤버들이라고 걔넬 부를 수 있는 지위조차도 잃었지만 그럼에도 그랬다.


혼자 방에서 가족들 몰래 팔목에 붕대를 감았다. 죽고 싶어도 몸의 욕구는 여전히 살기를 바랬다. 더 이상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는 몰라도.







겨우 내가 나를 추스를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은 이미 잃었으니까.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춤을 추는 선택지도 있었다. 목소리가 없어도 춤은 출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것까지 잃을까봐 겁이 났다. 아껴두고 싶었다.


그렇게 다른 일을 찾는 동안에도 시간은 갔다.





집전화로 나에게 전화가 왔다고 했다. 멤버들은 아니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서야 수화기를 들었다. 본능적으로 여보세요. 하고 말을 했지만 역시 소리도, 색깔도 없었다.


“얘기 들었어. 문빈아”


목소리조차 가물가물한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자신을 삼촌이라는 말로 칭했다. 일본에 오지 않겠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방송국에 자리가 하나 있으니까 다른 일 하면서 머리도 식혀보고 좋으면 일본에서 계속 살아도 되니까.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거기라면 모두 다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일본어라면 아주 못하지는 않았다. 내 7년 사이 것들 중 남은 몇 안되는 것이었다. 망설임은 하나도 없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아무것도 못했던 건 내가 말을 못해서가 아니었다는 걸.


그냥 나는 어디에서라도 멤버들을 만날까봐

그게 가장 무서웠을 뿐이다.


일본에 가면 다 잊어버리겠노라고 그렇게 부모님괴 약속까지 했다. 잘살겠다고. 이제 그룹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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