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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콩] 달빛 03

리얼물, 목소리를 잃어버린 문빈


[M]

회사의 도움으로 병원을 다녔다. 애초에 도움이라곤 생각치도 않는다. 그저 제 일을 수습하기에 급급해 나온 해결책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을 다녔다. 가장 지금 상황이 답답한 건 내 자신이니까.


말을 못하니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물론 은우가 자주 말을 걸었다. 대답하지 않았을 뿐이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은우랑은 휴대폰 메모장으로 종종 얘기를 하게 되었다.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은 2주가 넘는 시간동안 나를 괴롭혔다. 


병원을 다녀오면 연습실을 갔다. 연습실이 차라리 마음 편했다. 정적뿐인 숙소에 있는 일보단 노랫소리라도 들리는 연습실이 훨씬 나았다. 


나는 춤을 췄다. 노래를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은 거울 속에서 춤추고 있는 내 얼굴을 마주했다. 처음의 즐거움은 온데간데 없었다. 노래도 끄지 않고 주저 앉아 멍하게 있었다. 울지도 못했다. 옛날에 울면 선물을 주지 않는다던 산타할아버지를 믿었던 것처럼 왠지 울면 내 목소리를 정말 통으로 가져가버릴 것만 같아서.






단체연습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멤버들이 불편해 할 것이다. 나조차도 이런 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멤버들이라고 딱히 알 리 없었다. 숙소가 아닌 다음에야 최대한 안부딪히게 노력했다. 그 불편한 공기를 느끼는 게 싫었다. 그래도 배운 적 없는 안무들은 어떻게든 쫓아가야 해서 그런 날은 단체연습을 했다. 내가 있는 날의 단체연습은 유독 조용했다. 그게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는 나중에야 생각한 일이다.


아마도, 배려일 것이다.


지나친 배려를 받으면서 생각했다. 이젠 정리를 할 때가 됬다고. 하루하루 부정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영영 잃은 건 아니라고, 꼭 돌아올 거라고. 제대로 된 목소리로 말하지 못한 게 꼭 한달이었다. 더 이상 기다림의 의미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련이 정리되는대로 여길 떠나야 겠다. 아무도 붙잡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 없는 가수는 어떤 의미도 손에 쥘 수 없으니까.







[R]

빈이 형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지도 한참이 지났다. 말도 하지 않고 매일 정해진 루트로만 다니는 형을 보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나름대로의 정리를 하고 있었다. 


한달이면 회사도 오래 기다려준 편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시적이길 바랬고 일시적일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형조차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형도 이제 목소리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은 버린지 오래일 것이다.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같이 연습을 할 때도, 혼자 연습을 하는 모습을 흘끗 봐도 더이상 춤추는 게 좋았고 노래하는 게 좋았었던 형의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모습조차도 익숙해졌을 때, 형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휴대폰 메모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는 했지만. 


“나 이제 짐 다 쌌어.”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덤덤하지 못하다. 언젠가는 떨어지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실에 덤덤하기엔 7년이란 시간이 참 컸다. 그만둘거라고 했다. 형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느꼈듯 이 형은 나보다 훨씬 잘하는 형이니까. 그냥 안아주었을 뿐이다.


“..어디로 갈거야?”


집. 메모장에 그 한글자가 쓰여졌다. 돌이켜보면 둘이라서 여기까지 왔다. 옆을 스쳐지나간 연습생들만 해도 그룹 2개는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꿋꿋이 아스트로가 될 때까지 버틴 건 다 형 때문이었다. 형이랑 같이 있었으니까. 형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형을 미워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형, 연락해. 진짜로..”


지금 당장 나가는 거 아니라고. 형은 그렇게 메모장에 적고는 웃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살지. 목소리가 없는 삶이라.. 나는 그렇게는 하루도 살 수 없다.** 








[C]

빈이는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 매니저 형한테 물었다. 언제쯤이면 빈이가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 같느냐고. 형은 6개월이라고 답했다. 병원에서 분명 그랬었다고. 그것만 믿었다. 6개월 뒤면 목소리가 나올거라고. 그리고 또 한가지 믿었다. 회사가 이렇게 빈이를 버릴 리 없을 거라고.


사실 빈이는 퇴원하고서 당장 회사를 나갈 생각이었다. 물어봤었다. 2주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우리가 알고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빈이는 그 2주를 철저하게 헤아리고 있었다.







드라마 촬영을 3박 4일로 가게 되어서 마치 해외투어를 갈 때처럼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었다. 멤버들은 연습실에 있었고 빈이는 오늘 연습실에 가지 않았다. 한참을 짐을 싸고 나서야 알았다. 빈이의 짐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방 한구석에는 세워진 빈이의 캐리어가 차지하고 있었다. 


“빈아, 빈아”


자고 있는 빈이를 깨웠다. 빈이는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빈이 입모양으로 “왜?”라고 물었다. 


“너 어디가?”


빈이 입을 꾹 다물었다. 가는 거구나. 맞구나. 납득할 수 없었다. 6개월이면 나을 수 있다며 너.. 내 말에 문빈이는 고개를 저었다. 


“가지마. 나 너 가면 다시는 안봐.”


빈이가 휴대폰을 들었다. 빈이의 캐리어로 시선을 돌렸다. 캐리어에는 이미 짐이 다 들어있을 것이다. 다시 빈이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 걘 이미 울고 있었다. 빈이 메모장을 내밀었다. 


나도 너 볼 생각 없어. 안나가면 니가 어떻게 해줄건데? 한 달을 기다렸어. 나 아무 이상도 없대. 말을 못할 순 있어도... 목소리가 안나오는 경우는 없대. 내가 목소리가 안나오는 게 내가 말하기 싫어서, 노래하기 싫어서래. 내가 이틀을 기다릴까? 아니면 한달을 더 기다릴까? 아니면 6개월을 기다려볼까? 그럼 목소리가 나올까? 누가 날 기다려주는데?


미안해.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정말로 나가는 선택지만은 절대 아니었다.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자고 졸랐다. 


춤과 노래 어느 쪽에도 소질이 없었던 나의 연습생 시절을 다잡아준 건 다 빈이였다. 그래서 상상할 수 없다. 


빈이가 없는 숙소 

빈이가 없는 나


그리고 문빈이 없는 아스트로. 


빈이는 내가 쥐고있는 제 휴대폰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었다. 


되지도 않을 일로 희망고문하게 하지마. 그게 제일 잔인한 일이니까. 나 붙잡지마. 지금도 나 너무 힘들어.  


무력한 내가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겨우 짐을 다 싸고 숙소를 나섰다. 다시 돌아오면 너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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