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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콩] 달빛 02

리얼물 목소리를 잃어버린 문빈



[C]

광고촬영 하나. 오늘의 스케줄은 그게 전부였다. 다행이었다. 며칠 간 숨도 못쉬는 스케줄이 계속되다가 드디어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그 광고촬영 시간이 많이 이르다는게 문제이긴 했지만 원래 이 바닥이 시간감각 없는 사람들이 엉켜사는 곳이라 그리 뭐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다 찍고 나면 안무연습하러 가야겠지. 개인스케줄에 파묻힌 몸은 자꾸 안무를 잊는다. 물론 그렇다고 몇 백, 어쩌면 몇 천번을 춘 타이틀곡 안무를 잊지는 않지만.. 원래 춤이랑은 인연도 없고 재능도 없는 사람이 나인지라 더 그랬다.


“수고하셨습니다.”


여기저기서 같은 말이 들리고 스탭들이 장비를 정리할 즈음 매니저 형이 나를 불러세웠다. 


“형, 왜 불렀어요?”

“은우야, 문빈이가 지금 병원에 있대.”


눈에 보이는 것도, 귀로 들리는 것도 없었다. 뭔가에 홀린 사람마냥 나설 준비를 했다. 사실, 춤을 추는 사람들이니까 어지간하게 다치지 않고서야 병원을 잘가지 않는다. 어디 부러지지 않는 한은 그냥 파스 뿌리고 감기 걸리면 종합감기약 좀 챙겨먹고.. 그냥 그것 뿐이다. 게다가 멤버들 모두 잘아플만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차에 타고 나서야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문빈이는 수술을 받고 있다고 했다. 외상성 뇌출혈이라고 했다. 정신없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진우 형이 마른 세수를 하고 있었다. 


“어제 무슨 일 있었냐 진짜..”


문빈이 깨어나서 답할 수 밖에는 없는 질문이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멤버들도 전부 모른다는 말 뿐이었다. 보호자 대기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수술중이라는 표시등은 내가 도착한지 얼마 안지나서 바로 꺼졌다. 의사가 나오자마자 명준이 형이 물었다. 


“빈이 목소리는요?”


내가 모르는 일이 하나가 더 있었다. 의사는 자기 할말만 하고 갔다. 일단 수술은 잘끝났으니 지켜보자는 말을 한 의사가 우리를 두고 지나쳐갔다.


“…형.. 문빈이 형 목소리가 안나온대요.”


민혁이는 나에게 보여준 적 없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소리가 없다는 것, 빈이가 아프다는 것, 어느 것 하나도 상상해본 일이 없었다. 






빈이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들어왔음에도 누구 하나 불을 켜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낮이라서 어렴풋이, 애매하게 숙소가 밝았다.


깨어나면 괜찮기를 빌어야 했다. 매니저 형은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내일이 되면 별 일 아닐거라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어둠만큼 짙은 한숨소리가 숙소를 장악했을 뿐이다. 숙소의 불이 켜져도 숙소의 공기는 여전히 어둡다.


매니저 형은 연습을 딱히 독촉하지 않았다. 쉬고 싶으면 쉬라고 했다. 지금 연습을 한다고 딱히 효율 따위가 있을리도 없다.


니가 노래를 못하는 것도,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 것도,

모두 바란 적 없다. 


그런데 왜








[Y]

학교를 갔다가 연습을 하던 며칠이 연습 대신 병원에 가는 것으로 대치되었다. 빈이 형은 며칠 안가 퇴원을 했다. 물론 퇴원할 때까지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몇몇 행사를 다녀왔다. 형의 파트는 명준이 형과 둘이 나눠서 메웠다. 그것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이었다. 형의 파트는 1인분이라 정의내릴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니까.





형은 퇴원 후에 병원에 집착했다. 매일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자세한 것 전부는 전해듣지 못했지만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었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숙소에서 쉬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형은 꼬박꼬박 연습실을 나갔다. 형은 춤을 췄다. 그것도 아니라면 보컬 연습실에서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이따금씩 복도를 지나다니면서 보곤 한다. 


소리 없이 구석에서 움직이는 입술이 

가사를 읊는 모습을.


형은 단체연습에는 잘나타나지 않았다. 간단한 춤 동작을 맞추는 것조차도 하고 싶지 않아했다. 콘서트를 대비해서 받아두는 수록곡 안무를 배울 때만 이따금씩 얼굴을 비췄을 뿐이다. 목소리도 안나오는데 안무는 왜 배우냐는 소리도 들었다. 형의 얼굴엔 점점 표정이 사라졌다.


돌아보면 형과 같이 연습할 땐 숨조차 조심히 쉬었다.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래도 보컬실에서 넘어오는 우리의 목소리를 형은 계속 듣고 있었을테지만.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모인 연습은 음악소리만으로 이루어졌다. 단체 연습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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